우리들은 길던 짧던 이 세상을 살아가며 여러 종류의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며
또한 헤어지기도 한다. 오래 같이 지나기도 하고 곧장 헤어지기도 한다.
처음에는 서로 호감을 가지고 만났는데 자꾸 만나 교제하다 보면 왠지 부담스럽고
실망이 가는 사람도 있고, 반대로 처음에는 별로 마음에 와 닿지는 않고
서먹서먹했으나 오랜 시간 만나고 지나다 보면 정이 깊어지고 진국인 사람도 있다.
처음부터 좋은 인상으로 만나 믿음을 가지고 정이 가는 좋은 사람도 있다.
사랑하여 좋은 인연으로 만나 이 세상 끝까지 함께 가기를 소망하나 세월의 무게와
상황의 변화로 헤어져야 하는 가슴 아픈 만남도 있다.
우리들은 보통 소박하고 따뜻하고 부드러운 만남을 기대한다.
소리도 없이 있어야 할 자리에 늘 있어주는 사람은 마치 겨울에 차가운 얼음 밑을
흐르는 물과 같아 소리는 내지 않지만 봄기운을 전하면서 조용히 흐르는 것과 같다.
이와 같이 늘 변함없이 상대편을 배려하면서 부담을 주지 않고 자신의 역할을
감당하는 사람들이 참 좋은 사람들이다. 이런 분들을 만나게 되면 우리에게 이런
인연을 가져다 준 분에 대하여 고맙게 생각하며 인생의 행복을 느끼며 만남의
소중함을 다시 깨닫는다.
그러나, 이처럼 좋은 사람을 만나려고 애쓰기 보다는 내 자신이 먼저 그런 사람이
되는 게 중요하다. 내가 먼저 좋은 사람이 되면 그도 내게 다가와 좋은 사람이
되어줄 것이기 때문이다. 만남이란 이와 같이 중요하고 “누구”를 “언제” “어떻게”
만나느냐에 따라 자신도 크게 달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
똑 같은 밥이라도 엿기름을 만나다 보면 식혜로 변한다. 그런데 누룩을 만나 지나다
보면 술이 된다. 누구를 만나느냐에 따라 식혜와 술로 결과가 달라진다.
중국의 교육속담에 “삼밭에 크는 쑥은 돌보지 않아도 스스로 곧게 큰다(麻中之逢
不扶自直)” “먹에 가까이 있는 자는 검게 된다(近墨者黑)” “맹자어머니도 세 번 이사를
다니면서 자식교육에 적합한 곳을 찾아 다녔다(孟母三遷之敎)”는 말도 한마디로
만남의 중요성을 말한다.
일반적으로 인간교육의 두 요소는 유전적 요인과 환경적 요인이다.
유전적 요인은 이미 부모로부터 받고 태어난 결정적 요소라 변경시킬 수 없다.
그러나 환경적 요인은 조정하고 선택하고 다듬어줄 수 있는 가변적 요인이다
그래서 환경적 요인으로서는 시간(언제), 공간(어디서), 인간(누구와)적 측면을 말할
수 있는데, 50년 전과 오늘이 다르고 대도시와 농어촌환경이 다르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환경적 요인으로는 인간적 환경으로 “누구와” 만나는 것이다.
짧지 않은 나의 인생을 뒤 돌아보면, 언제 어디서 무얼 어떻게 타이밍 맞춰
했는가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인생이란 길에서 누구를 만났느냐가 나의 인생을
결정지음에 99% 작용하였음을 솔직히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부모와 자녀, 남편과 아내, 스승과 제자, 상관과 부하, 선후배와 동창친구, 사회지인과
단체동료, 목회자와 신도, 인생의 길에서 만난 여타의 많은 인연 등, 이와 같이 누구를
만나느냐가 인간조형(造形)에 가장 중요한 요인뿐만 아니라 한 인간의 성공여부와 삶의
행복을 가름 짓는 절대적인 관건이며 또한 그가 속한 공동체의 운명을 결정짓는
중요한 열쇠임을 재삼 깊이 깨닫는다.
성경을 보면,
똑 같은 어머니라도, “하와”는 “가인”과 “아벨” 두 아들의 갈등에 대해 적절히 개입하지
못하여 인류최초의 살인인 형제살인이라는 비극으로 끝났지만, “리브가”는 반목하는
두 형제 “에서”와 “야곱”사이에 끼어들어 둘째 아들 “야곱”을 친정오빠 집으로 피신시킴
으로 일촉즉발의 불상사를 예방해 주었다. 불행에 불행이 겹친 “나오미”는 과부된
며느리 “룻”을 잘 만나 아름다운 고부관계의 모범이 되었고 “룻”은 또 시어머니를
공경하고 그의 신앙을 이어받아 재혼의 기회를 얻어 이방인으로서 “다윗”족보에
올랐으며 예수님 조상 반열에 까지 들게 된 것이다. “바울”과 “디모데”의 만남은 영적
지도자의 선후배의 만남과 사제지간의 만남의 좋은 표본이 되었다. 과거의 행적 때문에
개과친선한 후에도 공인 받지 못하고 전전긍긍하던 “바울”에게 “바나바”는 보증인과
후견인으로 지지자가 되어 주어서 새로운 신앙지도자의 입지를 보장해 주었다.
믿음의 아버지 “아브라함”을 아버지라 불렀던 “이삭”도 행복했지만 모리아산에서
아버지로부터 번제물이 될 뻔한 위기를 순종으로 받아드린 이삭을 아들로 둔
“아브라함”도 행복한 아버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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