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보르작의 생애 중부 유럽의 동쪽에 위치한 체코의 수도 프라하로부터 북쪽으로 약 30km 정도 떨어진 몰다우강 기슭에 호젓이 자리잡은 네라호제베스라는 작은 마을에 수육점과 여관업을 겸업하는 집안에서 지금부터 150여년 전인 1841년 9월 8일 안토닌 드보르작(Antonin Dvorak)이 태어났다. 말이 수육점과 여관업이지 워낙 소규모로 운영하는 장사인데다가 드보르작 이후 연달아 8형제가 태어나서 대식구가 되자 드보르작의 형제들은 기아에 가까우리만큼 헐벗고 굶주림 속에서 가난한 어린 시절을 보내야만 했다. 그러나 가난했지만 울창한 원시림을 벗삼아 자연 속에서, 소박한 풍습과 체코 특유의 민요를 접하며 성장한 드보르작은 집시들이 즐겨 다루던 바이올린을 취미로 배우면서 자연스럽게 음악을 가까이 할 수 있었다. 국민학교 입학과 동시에 선생님으로부터 바이올린을 배우기 시작하면서 드보르작의 타고난 음악적 재능은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한다. 그의 집을 들려가던 길손들에게 아낌없는 갈채를 받던 드보르작의 바이올린 솜씨는 동네의 자랑거리가 되어 마을의 축제나 경사가 있을 때면 으례히 연주를 하곤 하였다. 드보르작의 음악적 재능이 뛰어난 것을 알아챈 그의 삼촌은 드보르작을 오르간 연주가인 안토닌 리만에게 소개하여 리만밑에서 피아노와 오르간 그리고 기초 음악 이론을 배우기 시작하였다. 드보르작의, 음악가로서의 생애가 시작되는 것은 그의 나이 열 여섯살 때 프라하의 오르간 학교에 진학하면서 부터이다. 바이올린으로 아르바이트를 하며 고학으로 2년 간의 학업을 마친 드보르작은 사설 관현악단의 비올라 주자로 취직을 했지만 봉급이 워낙 적어 계속되는 가난을 면치 못하였다. 이처럼 가난한 생활 속에서도 작곡을 향한 마음은 활화산처럼 타고 있었고 더욱이 체코의 선구자적인 작곡가 스메타나(Bedrich Smetana, 1824-1884)가 지휘대에서 그의 자작 오페라 「팔려간 신부」를 지휘할 때 오케스트라 박스에서 비올라를 연주하고 있던 드보르작은 충격적인 자극을 받아 작곡에로의 집념은 날로 더해 갔다. 1862년 프라하의 국민극장 소속 관현악단이 발족되자 드보르작도 이 가극장 소속의 관현악단 멤버가 되어 1871년까지 10여년간을 전속단원으로 근무하며 작곡공부에 심혈을 기울였다. 그는 30세가 되어 비올라 주자직을 그만두고 교회의 오르가니스트로 봉직하는 한편 개인교수를 하며 자유스러운 생활을 하기도 했다. 교회에서의 고정급여가 생기며 생활사정도 조금 나아지게 되자 1873년 드보르작은 마음 착한 알토 가수인 안나 케르마코바(Anna Cermakova)를 만나 결혼한다. 또한 이 해는 그에게 있어서는 잊지 못할 시기로 행복한 결혼과 함께 오랫동안 동경하여 왔던 작곡계에 데뷔한 해이기도 하다. ※ 작품해설 교향곡 "신세계로부터"는 1893년 드보르작이 미국에 머물던 3년이라는 기간에 만들어진 곡으로 그는 고향에 대한 향수를 달래기 위해 보헤미아의 이주민이 사는 촌락 등을 찾아 다녔으며 거기에서 그들에게 유행하는 아메리카 인디언과 흑인의 민요를 연구 그 당시 미국인들도 잘 알지 못하던 흑인영가를 이 교향곡에 사용한다. 'From the New World'라는 이름은 당시 원장으로 있었던 뉴욕 국립 음악원의 창설자 자넷 사바 부인의 제안에 의해서 붙여지게 된 것으로 여기서 신세계는 미국을 의미한다. "신세계로부터" 교향곡은 총 4악장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여기에 실린 곡은 이중 제2악장 라르고이다. 5음 음계로 이루어진 아름다운 선율은 이 교향곡을 유명하게 하였으며 드보르작의 향수를 느낄 수 있다. 잉글리시 호른에 의해 연주되는 약간은 쓸쓸한 이 선율은 흑인 영가에서 영향을 받았다고 한다. 드보르작은 뉴욕 생활을 계속하는 동안 심한 향수에 빠져 견딜 수 없었으므로 미국의 일부이긴 했으나 고향 보히미아를 그대로 옮겨 놓은 듯한 아이오와주의 스필빌에서 시끄러운 도시를 피해 요양하고 있었다. 창작에 몰두 할 수 있었던 것은 이 때인데 「신세계로부터」는 여기서 완성되어 1893년12월 뉴욕에서 초연되었다. (출처:음악을 사랑하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