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시고기 /조창인 엄마는 프랑스에 있어야 되잖아요. 프랑스와 그림이 엄마에게는 제일 중요하니까요. 그런데 왜, 어떻게 알고 왔을까요. 아빠가 연락한 걸까요? "다움아, 엄마 보이니? 엄마 목소리 들려? 들리면 무슨 말이라도 해봐." 말을 못하니까 좋은 점도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엄마한테 무슨 이야기를 하겠어요? 할말이 없어요. 엄마도 나한테 할말이 별로 없을 거구요. 엄마는 내가 어떻게 지냈는지, 엄마에 대해서 무슨 생각을 하고 있었는지, 아무것도 모를 테니까요. 프랑스는 대단히 먼 나라고, 먼 곳에서 찾아온 엄마지만 반갑지 않아요. 아니, 기분 나빠요. 아빠와 나를 버리고 갈 때는 언제고... 엄마가 원래 엄마 마음대로 하는 줄은 알지만, 한 번쯤은 엄마 자신이 너무하다는 생각을 해야 할 거예요. "엄마가 많이 밉지?" 아빠는 어때요, 아빠도 엄마가 많이 미운가요? 난 아빠를 바라보고 눈으로 묻습니다. 연습한 대로 이리저리 눈동자를 굴려가면서요. 아빠는 알아차리지 못하고 있어요. 하필이면 왜 엄마 뒤쪽에 서 있을까요. 아빠만 따로 보고 싶은데 어쩔 수 없이 엄마도 봐야 되잖아요. "이 엄마를 용서하렴. 엄마로선 어쩔 수 없었단다." 갑자기 목구멍이 따금따금하더니 기침이 튀어나왔어요. 캑, 캑, 캑... 계속해서 기침을 해대자 아빠가 다가와 내 목을 어루만집니다. 아빠는 기침을 멈추게 하는 법을 알고 있답니다. 나에 대해서 모르는 게 하나도 없는 아빠죠. 물론 엄마는 나에 대해서 아는 게 하나도 없겠구요. 아빠의 손은 언제나 따듯합니다.사람의 온도는 모두 똑같다는데 어떤 사람은 따듯한 손을, 어떤 사람은 차가운 손을 갖고 있는 이유는 왜일까요. 손과 마음 사이에는 내가 알지 못하는 비밀 통로라도 연결되어 있는 걸까요? 나는 엄마에게서 빼낸 오른손을 아빠의 손으로 옮깁니다. 그게 내 마음이라는 걸 엄마가 알아차렸으면 좋으련만, 이번에 왼손이 엄마한테 잡히고 맙니다. 면회 시간이 후딱 지나가 버렸으면 해요. 먼 곳에서 온 엄마한테 쬐금 미안하지만, 미안한 걸로 따지면 엄마가 먼저잖아요. 손수건으로 눈물을 찍어 엄마가 아빠를 쏘아보면 말합니다. "당신이란 사람, 도대체 뭐하는 사람이죠? 어쩌면 아이를 이 지경으로 만들어놓을 수가 있어요." 입 안에 수도꼭지를 틀어 놓는 것처럼 자꾸만 침이 고입니다. 꼴깍꼴깍. 침을 삼키고 아빠의 말을 기다립니다. 당연히 아빠가 화를 낼 줄 알았죠. 엄마를 똑바로 쳐다보면서 말예요. 그런데 아빠는 멍한 눈으로 날 바라보고만 있어요. 아휴, 내 입에서 저절로 한숨이 새어나옵니다. 내가 아픈 게 왜 아빠 탓이죠? 엄마는 아무것도 모르면서...답답해요. 아빠도 마찬가지구요. 마치 아빠 잘못인 것처럼 가만히 있으면 어쩌자는 건지 도대체 모르겠어요. 나는 눈을 크게 뜨고 아빠에게 열심히 신호를 보냅니다. 포수의 사인을 받은 찬호 형이 강속구를 던지는 것처럼, 아빠가 엄마를 멋지게 스트라이크 아웃 시키기를 바라면서요. 자신을 바보라 스트라이크 아웃을 당했는데도 심판한테 악을 쓰며 대드는 선수가 있어요. 엄마도 그럴지 모르죠. 아빠는 잠자코 있다가 고개를 숙이고 내 눈을 들여다 봅니다. "아빠가 보이니?" 지금은 그게 중요한 문제가 아니죠, 아빠. "진짜로 아빠 얼굴 보이는 거야?" 할 수 없이 나는 고개를 끄덕입니다. 아빠의 얼굴이 형광등 열 개를 한꺼번에 켜놓은 것처럼 환해집니다. "잘 보여?" 다시 고개를 끄덕이자 또 아빠가 물어옵니다. "엄마도 보이니?" 난 엄마를 쳐다보지 않습니다. 고개를 끄덕이지도 않구요. 솔직히 그럴 마음이 없습니다. 전혀, 전혀요. |
출처 : 50-70대의사랑과 추억
글쓴이 : grace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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